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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한 스푼

봄날의 온기, 바람 속에 피어나는 생명의 노래

by 日新日新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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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겨울이 드디어 물러가고, 계절의 시곗바늘이 천천히 봄을 가리킨다. 창문을 살며시 열어보니 바람이 달라졌다. 차갑고 뾰족했던 바람은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부드럽고 온화한 숨결만이 살며시 들어온다. 이 바람 속에는 풀 냄새, 꽃향기, 그리고 무언가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기운이 뒤섞여 있다. 봄이 왔다는 걸 피부로 느끼는 순간이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니 어느새 땅 위에는 연둣빛의 어린 새싹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이 작은 존재들이 딱딱한 흙을 뚫고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인내했을까. 자연의 힘은 이렇게 고요하지만 강렬하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봄날, 무심코 스쳐 지나쳤던 것들이 하나둘 특별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봄날의 온기는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바람이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면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던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하다. 겨우내 잊고 지냈던 꿈과 소망들이 하나씩 꽃망울을 터뜨리듯 다시 피어난다. 나는 가끔씩 나무 그늘에 앉아 책을 펼쳐놓고 그저 봄바람을 느끼곤 한다. 책장은 그대로 멈춰 있지만 마음은 어느새 저 멀리 다른 곳을 여행하고 있다.

이맘때쯤 동네 근처 공원을 찾으면 산책로 주변에 화사하게 핀 꽃들이 사람들을 반긴다. 벚꽃의 하얀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마치 하늘이 사람들에게 보내는 선물 같다. 손바닥 위로 떨어진 꽃잎 한 장을 바라보면, 마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느낌마저 든다. 봄이 주는 찰나의 아름다움이다.

나는 특히 이른 아침의 봄날을 좋아한다. 아직 모든 것이 잠들어 있는 새벽, 창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마당으로 나가면, 햇살이 어깨를 부드럽게 감싸며 인사를 건넨다. 이런 순간에는 살아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이 작은 순간들이 모여 삶을 더 소중하게 만든다.

봄의 온기는 사람들 마음에도 전해진다. 얼었던 강물이 녹아 흐르듯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차가운 공기도 서서히 녹아간다. 거리엔 미소가 더 많아지고, 걸음걸이마저 가벼워진다. 이웃집 어르신들은 마당에서 화분을 손질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들은 골목에서 뛰어노는 소리로 동네를 채운다. 모두가 조금씩 행복해지는 계절, 봄이 가진 특별한 마법이다.

하지만 봄이 아름다운 것은 짧은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너무 빨리 지나가버릴까 봐, 매일매일 눈과 마음에 담아두려 노력한다. 길가에 피어난 작은 민들레꽃 한 송이, 무심히 지나쳤던 담벼락의 넝쿨 식물마저도 내겐 아름다운 풍경으로 다가온다. 봄이니까 가능한 감성이다.

때때로, 이런 봄날에는 나도 모르게 시인이 되고 싶어진다. 작은 메모장에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으며, 자연과 교감하는 순간을 기록한다. 이것이 봄날이 주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시간, 잠시 세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나를 되찾는 시간 말이다.

산책길에서 만난 벚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한참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넓다. 흐르는 구름은 어딘가로 바삐 달려가고 있지만, 나는 이 자리에 머물러 있다. 한동안 나와 하늘 사이에는 아무 말이 없지만, 그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봄이 내게 건네는 말을 듣는다.

“이 순간을 소중히 하라. 삶은 이렇게 찰나의 순간들이 모여 빛난다.”

돌아오는 길, 나는 마음속에 봄의 온기를 가득 담고 발걸음을 옮긴다. 이제 곧 여름이 찾아오겠지만, 오늘의 이 따스한 기억은 오랫동안 내 마음속에서 빛날 것이다. 봄이 내게 남긴 온기는 그렇게, 내 안에서 영원한 생명의 노래로 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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