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또 다시 도시의 소음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산을 찾았다. 한 주 동안 쌓인 피로를 풀고자 도시 근교의 작은 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니 아직 도시가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듯했다. 평소보다 한산한 도로를 지나 산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몇몇 산행객들이 각자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산 입구에서 깊은 숨을 들이마시니, 도시의 매캐한 공기와는 다른 청량함이 느껴졌다. 산소가 풍부한 공기는 폐 깊숙이 스며들어 몸 구석구석을 맑게 해주는 듯했다. 등산화를 단단히 매고, 배낭을 어깨에 메니 이제 진짜 산행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
처음 접하는 산길은 완만했다. 흙과 자갈이 섞인 길을 따라 걷다 보니, 도시의 딱딱한 아스팔트 위를 걷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져 왔다. 발걸음마다 흙이 조금씩 움푹 들어가며 부드럽게 발을 받쳐주었다. 걷는 내내 귀를 간지럽히는 새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 소리는 자연만의 독특한 음악이었다.
산길을 따라 올라갈수록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평소 운동 부족으로 금세 거친 호흡이 되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숨가쁨조차 즐거웠다. 도시에서는 앉아서 일하느라 제대로 숨쉬기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가쁜 숨을 내쉬고 들이마실 때마다 몸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중간 중간 만나는 다른 등산객들과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안녕하세요", "날씨 좋네요", "조심히 내려가세요"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이지만, 도시에서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사람들과 나누지 못했던 따뜻한 교감이었다. 서로의 목적지나 등산 경험에 대해 짧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잠시 숨도 고르고 다음 여정을 위한 에너지도 얻을 수 있었다.
산길의 경사가 점점 가팔라지면서 발걸음은 느려졌지만, 그만큼 주변 경관을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작은 꽃들과 이름 모를 풀들, 바위 틈에서 자라는 이끼의 선명한 초록색까지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도시에서는 회색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한정된 하늘만 바라보다가, 이렇게 넓은 자연을 마주하니 시야가 확 트이는 느낌이었다.
중간 쉼터에 도착해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배낭에서 물병을 꺼내 목을 축이고, 준비해온 간식을 먹으며 땀을 식혔다. 벤치에 앉아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니, 내가 얼마나 많은 고도를 올라왔는지 실감이 났다. 먼 도시의 모습은 작게 보였고, 그곳에서의 복잡한 일상도 한순간 잊혀졌다.
쉼터에서 만난 한 노부부가 자신들이 직접 담근 매실청을 나눠주셨다. 달콤하고 상큼한 매실청 한 모금이 지친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분들은 매주 이 산을 오르신다고 했다. "산에 오면 몸이 가벼워져요. 병원 갈 일도 줄고, 마음도 편안해지죠." 노부부의 말씀에 깊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쉼을 마치고 다시 산길로 접어들었다. 이번엔 숲이 우거진 구간으로, 큰 나무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아래로 걸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만드는 빛의 패턴이 땅 위에 아름답게 펼쳐졌다. 걷는 내내 나무들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음껏 들이마셨다. 도시의 실내에서 인공적인 방향제나 향수 냄새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렇게 자연의 향기를 맡으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숲길을 지나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가쁜 호흡과 떨리는 다리가 여정의 고단함을 말해주었지만, 그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성취감이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그 모든 노력이 아깝지 않을 만큼 장관이었다. 산들이 겹겹이 이어지는 능선과 그 사이로 흐르는 강줄기, 멀리 보이는 작은 마을들까지, 탁 트인 시야가 주는 개방감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이었다.
정상에서 돗자리를 펴고 준비해간 도시락을 먹었다. 산에서 먹는 밥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아마도 신선한 공기와 운동으로 깨어난 미각 때문일 것이다. 도시락을 비우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명상에 잠겼다. 바람 소리와 새소리만 들리는 고요 속에서, 평소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던 잡념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산길은 오르막보다 몸은 덜 힘들었지만, 다리의 균형을 잡는 데 더 집중해야 했다.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며 천천히 내려갔다. 오르막에서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길이라도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을 준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마치 삶의 여정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을 완전히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가 깊어가고 있었다. 온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도시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오늘 산행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보았다.
산은 단순한 운동이나 취미 이상의 것을 내게 주었다. 그것은 일종의 치유였다. 도시 생활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자연의 품에 맡기고, 그 안에서 회복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매일 컴퓨터와 스마트폰 화면만 바라보던 눈은 다양한 자연의 색감을 통해 휴식을 얻었고, 사무실 의자에 굳어있던 근육들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가며 깨어났다.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 찼던 머리는 자연의 소리와 향기 속에서 비워졌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웠을 때, 온몸의 근육통이 느껴졌지만 그것조차 만족스러웠다. 이 통증은 내 몸이 살아있다는 증거였고, 내일이면 더 강해질 것이라는 약속이기도 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도, 오늘 경험한 산의 기억은 여전히 선명했다.
앞으로도 틈날 때마다 산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복잡한 도시 생활 속에서 잃어버린 나 자신을 찾는 여정, 그리고 자연과 함께하는 건강한 회복의 시간을 위해. 산길 위에서 깊게 들이마신 한 번의 숨이, 도시에서의 수많은 얕은 숨보다 내게는 더 값진 것임을 오늘 다시 한번 깨달았다.
다음 주말, 나는 또 다른 산을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새로운 풍경과 만남, 그리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그곳에 있어 지친 도시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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