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바탕이지만, 정작 우리는 그 존재를 자주 잊고 살아간다. 매일 아침 해가 뜨고, 오후가 지나고, 밤이 찾아오는 일상의 흐름 속에서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쉼 없이 우리 곁을 스쳐간다. 우리는 때때로 시간을 붙잡고 싶어 하고, 때로는 지나간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시간은 늘 앞으로만 흐른다. 그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낼 것인가에 대한 태도를 정하는 일뿐이다.
어릴 적에는 시간이 무한하게 느껴졌다. 방학은 끝이 없을 것 같았고, 기다리는 생일은 늘 오래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속력을 더하고, 하루는 짧아지며, 일주일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어제 같던 일이 벌써 몇 달 전 일이고, 몇 년 전의 기억이 엊그제처럼 떠오르기도 한다. 시간은 한결같이 흐르지만, 우리가 느끼는 시간의 속도는 그렇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시간을 더 절실히 느끼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얼굴의 주름을 만들고, 머리카락에 흰빛을 스미게 하고, 사람의 마음도 달라지게 만든다. 어릴 적 친구와의 추억도, 첫사랑의 설렘도,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던 그날의 결심도 모두 시간 속에서 빛을 잃거나, 더 빛나기도 한다. 시간은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때로는 잊지 못할 그리움을 남기기도 한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잃기도 하고 얻기도 하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렇기에 시간은 우리 삶에서 가장 공평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존재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하루를 무심히 흘려보내고, 어떤 사람은 같은 하루를 무게감 있게 살아낸다. 그래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선택의 연속이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며,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 그 하루가 쌓이고,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이 된다.
시간을 온전히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순간을 마주하는 용기, 매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리고 지나간 시간에 대해 후회보다는 감사할 수 있는 태도일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하늘을 올려다보고, 가족의 안부를 묻고,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일.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시간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다.
시간은 늘 똑같은 리듬으로 흐르지만, 우리의 감정은 그것을 다르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고, 외롭고 힘든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기다림은 시간을 늘리고, 두려움은 시간을 정지시키며, 기쁨은 시간을 잊게 만든다. 그래서 시간은 단지 숫자가 아니라 감정의 온도에 따라 색과 무게를 달리하는 존재다.
사람들은 늘 시간을 관리하려 한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고, 목표를 설정하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 애쓴다. 물론 이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간에 마음을 담는 일이다. 아무리 촘촘히 채운 하루라도, 마음 없이 흘러간 시간은 공허하고, 아무런 성과가 없어도 깊은 감동과 사랑이 담긴 시간은 풍성하다. 시간은 우리가 무엇을 남겼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은 점점 더 귀하게 느껴진다. 젊은 날에는 몰랐던 것들—부모님의 흰머리, 친구들과의 추억, 아이의 성장—이 하나하나 소중해진다. 그리고 그 소중함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시간을 아끼고 싶어지고, 의미 있게 보내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단순한 것을 사랑하게 되고, 느린 것을 귀하게 여기게 된다.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나뉘지만, 사실 우리가 살 수 있는 시간은 오직 현재뿐이다. 과거는 기억으로 남고, 미래는 상상으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숨 쉬는 이 순간만이 진짜 우리의 시간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결국 인생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가 오늘 한 말,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건넨 눈빛, 지금 내가 들여다보고 있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시간이자 삶이다.
오늘 하루,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춰서, 내 안의 시간을 들여다보자. 너무 빠르게 지나쳐 버린 것들, 미뤄두었던 감정들, 잊고 있던 소중한 사람들. 그들을 다시 불러와 마음 한켠에 놓아두자. 그리고 오늘 하루를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보자. 그 하루가 쌓여 나의 인생이 된다.
시간은 흘러간다. 그러나 그 속에 남는 것은 사랑, 배려, 진심, 용기, 그리고 사람이다. 우리는 시간 속에 그런 것들을 남기며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시간과 함께 살아가는 이유이고, 의미이고,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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