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하루는 스물네 시간, 일 분은 육십 초. 사람의 신분도, 나이도, 소유도 시간 앞에서는 평등하다. 그러나 그 공평한 시간은 누구에게는 축복이고, 누구에게는 짐이 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무심한 흐름일 뿐이다. 결국 시간은 어떻게 흘러가느냐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우리 삶에 각인된다.
우리는 늘 시간을 말한다. 시간이 없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마치 시간을 하나의 존재처럼 부르며 이야기를 나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지나간 시간을 꺼내는 일은 후회나 회한을 동반하고, 다가올 시간을 상상하는 일은 두려움과 불확실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지금'에 집중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지나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떠난 기차처럼, 지나간 계절처럼, 다시는 그 자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그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흘려보낸 시간도, 아픔과 눈물 속에 버텨낸 시간도, 결국 모두 우리 삶의 한 페이지로 남는다. 우리는 그 페이지를 찢어낼 수 없다. 다만 다시 읽고,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김으로써 그 시간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과거는 단지 흘러간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지금의 나를 만든 뿌리이며, 내가 누구인지 설명하는 단서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 젊은 날의 방황,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 실패와 극복의 기억들. 이 모든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지금의 나를 이룬다. 그러니 지나간 시간을 부정하지 말자. 그 시간은 내가 견뎌낸 삶의 증거이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의 근원이 된다.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인생을 대하는 태도와 같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곧 삶을 성실하게 살겠다는 다짐이고, 시간을 아끼겠다는 마음은 결국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고백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시간에 대한 최고의 예의다.
현재는 유일하게 우리가 붙잡을 수 있는 시간이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오직 현재만이 우리에게 실재하는 시간이며, 우리가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이다.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으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지금 이 순간이 쌓여 미래가 되고, 지금의 선택이 결국 인생을 만든다.
미래는 우리에게 늘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안겨준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하고, 동시에 어떤 일이 가능할지 모르기에 기대된다. 우리는 그 두 감정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려 애쓴다. 너무 앞서 걱정하지도 말고, 너무 느긋하게 기다리지도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최선을 다해 하자. 그러면 미래는 지금의 연장선에서 자연스럽게 피어날 것이다.
시간은 흘러가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은 흘러가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따뜻한 손길, 첫사랑의 설렘, 슬픔에 겨워 흘린 눈물, 웃음 속에 담긴 행복. 그 모든 감정은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고, 시간 속에서 다시 꺼내볼 수 있는 보물이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기억함으로써, 시간의 흐름을 단순한 소멸이 아니라 축적의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누군가는 말한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고. 그러나 시간은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간이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우리가 아픔을 껴안고 살아내기 때문에 치유되는 것이다. 시간이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 속에서 우리가 답을 찾아가기 때문에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시간과 친해지는 방법은 단순하다. 하루의 끝에서 오늘을 돌아보고, 하루의 시작에서 내일을 그려보는 것. 그리고 그 하루하루를 진심으로 살아가는 것. 때로는 멈춰서서 하늘을 바라보고, 때로는 달리는 속도를 늦추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저 존재하는 시간을 누려보는 것. 그렇게 우리는 시간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지나간 시간에게 말을 걸어보자. 그때 나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그리고 그 물음 속에서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얻자. 시간은 후회가 아니라, 이해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때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나이며, 앞으로의 나도 여전히 나일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변한다. 하지만 그 변화 속에서 우리가 잃지 말아야 할 것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는 태도다.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다. 그러니 그 시간을 사랑하자. 아끼자. 그리고 감사하자. 그렇게 살아간 시간이 결국 나를 만들고, 나의 이야기를 완성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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