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은 언제나 골목길에서 먼저 온다

골목길에서 시작되는 계절의 속삭임

어느 계절보다 조용히, 그리고 은근하게 다가오는 봄은 늘 골목길에서 먼저 모습을 드러낸다. 아침 햇살이 스며든 마을 골목길을 걷다 보면, 대문 옆에서 수줍게 피어난 개나리 한 송이가 가장 먼저 인사를 건넨다. 아직 바람은 차지만, 햇살은 분명히 따뜻해졌다. 손등에 와 닿는 공기 속에서 나는 봄의 냄새를 맡는다. 그것은 겨울 동안 잠들어 있던 흙냄새이자, 새싹이 올라오기 전의 초록 향기다.

이른 봄의 골목길은 참 정겹다. 사람들의 발길이 덜 닿는 구석에 피어 있는 들꽃들, 오래된 집의 벽 틈에서 고개를 내미는 이끼들,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가 느릿하게 발을 옮기며 하루를 시작하는 풍경. 누구는 아직 겨울이라 말하지만, 자연은 이 골목에서 이미 봄을 시작했다. 이런 풍경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되고, 계절의 시가 된다.

봄을 담는 시선, 일상의 발견

나는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골목길로 나섰다. 특별한 피사체를 찾기보다는, 내 마음의 계절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것들은 늘 계절의 흐름을 가장 먼저 안다. 고개를 들어보니 전봇대 위에는 까치가 둥지를 트는 중이다. 가지를 물고 날아오는 모습이 분주하지만, 그 모습에서 이상하게도 안정감을 느낀다. 봄이구나. 생명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구나.

나무의 가지 끝에서는 아직 조심스럽게 움트는 새싹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작은 생명의 흔들림에 마음이 묘하게 울린다. 작은 변화는 언제나 큰 감동을 준다. 개나리 옆에는 진달래도 분홍색 입술을 벌리고 있었고, 지나가는 바람은 그 꽃잎 사이로 조용히 스며든다.

골목길 끝 작은 마당 앞에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할머니가 인사를 건넨다. "사진 찍는 겨? 개나리가 이쁘제." 그 한마디에 나는 또 미소가 지어진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그 골목은 늘 봄이었다. 나 또한 언젠가 이 길을 떠올릴 때, 오늘의 이 햇살과 개나리, 그리고 할머니의 따뜻한 음성을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시간을 걷는 발걸음, 추억을 닮다

이 골목길은 매년 봄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보지 못하고 지나친 작년의 봄, 그리고 그 전해의 봄도 이 골목 어딘가에서 피어났을 것이다. 누군가는 그 봄을 매일 같이 지나쳤을 테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오늘 처음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봄은 기억과 함께 쌓여간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골목길의 담벼락은 시간이 만든 예술 작품이다. 낡은 벽면에 흐릿하게 남은 페인트 자국, 삐걱이는 나무 대문, 그리고 작은 틈새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꽃 한 송이.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봄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놓치며 살아간다. 하지만 이 골목길은 말없이 말해준다. ‘여기 봄이 있다’고.

골목은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시간이 쌓이고 정이 흐르는 장소다. 누군가의 유년 시절이 머무르고, 자전거 바퀴 자국과 아이들의 웃음이 배어 있는 곳. 봄은 그런 공간에서 더욱 뚜렷하게 다가온다. 아스팔트 도로 위의 봄은 차갑고 단조로울 수 있지만, 이 골목의 봄은 오감으로 느껴진다. 눈으로 보고, 코로 맡고, 손끝으로 만지고, 마음으로 듣는 계절.

일상 속 계절, 그리고 나의 기록

돌아오는 길, 나는 주머니 속에서 작은 꽃잎 하나를 꺼냈다. 방금 전 개나리 밑에서 주워든 노란 꽃잎. 그것은 오늘 내가 본 가장 확실한 봄의 증거였다. 나는 그것을 일기장 속에 끼워두었다. 그리고 그 옆에 이렇게 적었다.

"봄은 언제나 골목길에서 먼저 온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오늘, 나는 조금 더 따뜻해졌다."

이 수필은 단순한 풍경의 묘사가 아니라, 일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삶의 온도를 기록한 것이다. 우리는 때로 너무 멀리서 봄을 찾는다. 벚꽃 축제나 산책로, 여행지에서만 봄을 만나려 한다. 하지만 진짜 봄은 늘 가장 가까운 곳, 바로 우리의 골목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그 골목길은 당신의 하루 속에도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그곳을 천천히 걸어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당신도 어느 봄날의 나처럼, 마음이 따뜻해지는 한순간을 만나게 될 테니까.

계절을 기억하는 법

봄은 잠깐 스쳐 지나가지만, 그 잔상은 오래 남는다. 개나리와 목련, 진달래와 벚꽃이 순식간에 피고 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억은 내 안에서 더 오래 피어난다. 우리는 봄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시를 쓰고, 이렇게 수필을 남긴다. 그것은 계절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계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나는 내년 봄에도 이 골목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는 또 어떤 풍경이 날 반길지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봄은 다시, 조용히, 이 골목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그 봄을 맞이하며, 삶의 소중함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