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 스푼

숲이 건네는 말들

日新日新 2025. 5. 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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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숨을 고르게 된다. 땅 위에 흩어진 낙엽을 밟는 소리,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의 떨림, 그리고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의 결이 이마에 닿을 때, 마음은 저절로 고요해진다. 자연은 말이 없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가장 깊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 목소리는 위로이자 충고이고, 기쁨이자 절제이며, 끝내는 나 자신과의 대화로 이어진다.

도시의 삶은 끊임없이 소리를 낸다. 자동차의 경적, 신호등의 깜빡임, 스마트폰의 진동, 사람들의 말소리. 그 속에서 우리는 늘 바쁘다. 걷지만 마음은 어디에도 닿지 않고, 쉬지만 진정한 휴식은 없다. 자연은 그 모든 소음을 덜어내는 힘이 있다. 숲에 서면, 우리는 다시 처음의 리듬으로 돌아간다. 인간이 자연에서 나왔다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게 되는 순간이다.

숲은 끊임없이 변한다. 봄에는 연두빛 새싹이 돋아나고, 여름에는 무성한 초록이 공기를 덮으며, 가을이면 붉고 노란 빛으로 절정을 이루고, 겨울에는 다시 모든 것을 비워낸다. 그 변화는 조급하지 않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정해진 순서를 따라 제때에 맞는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는 그 질서에서 삶의 주기를 배운다. 어떤 시기는 움츠리고, 어떤 시기는 뻗어 나가며, 어떤 시기는 다시 내려놓는 법을 숲은 가르쳐준다.

나는 가끔 나무를 사람처럼 느낀다.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느티나무는 마을 어귀에서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노인 같고, 키 작은 산딸나무는 수줍음 많은 아이 같고, 가지를 넓게 펼친 전나무는 두 팔 벌려 친구를 맞이하는 이웃 같다. 나무들은 말없이 그 자리를 지키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 뿌리들이 땅속에서 서로를 감싸며 살아가듯, 우리도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간다.

 

숲은 치유의 공간이다. 병든 마음도, 지친 몸도 숲에서는 다시 숨을 고른다. 자연은 강요하지 않는다. 조언하지도 않고 판단하지도 않는다. 그저 함께 있어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숲에서 울 수 있고, 웃을 수 있고, 아무 말 없이 서 있을 수도 있다. 숲은 존재 자체로 충분한 위로가 된다. 우리가 가장 자연스러워지는 곳, 그것이 바로 자연이다.

산책 중에 만나는 다람쥐의 재빠른 몸짓, 바위 위에서 햇살을 쬐는 도마뱀의 태연한 자세, 이끼 낀 돌담에 맺힌 이슬 한 방울. 그 작고 사소한 생명들이 모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경이롭다. 우리는 종종 인간이 중심인 양 착각하지만, 자연은 수많은 생명의 공존 속에서 아름다움을 완성한다. 그 조화로움 앞에서 우리는 겸허해진다.

자연은 무한한 교사다. 나뭇잎 하나에도, 꽃잎의 결에도, 강물의 흐름에도 배울 것이 있다. 물은 낮은 곳으로 흐르며, 바람은 멈추지 않고 방향을 바꾸며, 돌은 부서지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닳아간다. 자연의 방식은 곧 삶의 방식이다. 우리는 너무 빠르게 가려 하고, 너무 많이 가지려 하며, 너무 강하게 이기려 한다. 자연은 그러지 않는다. 자연은 ‘충분함’을 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충분함을 다시 배워야 한다.

숲을 거닐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작아진다. 그러나 그 작아짐은 초라함이 아니라 자유로움이다. 나를 옥죄던 생각에서 풀려나, 내 존재 그대로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자연 앞에서 우리는 가면을 벗는다. 직업도, 지위도, 소유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숨 쉬는 존재로서, 살아 있는 생명체로서 서로를 바라본다. 그 눈맞춤이 진짜 만남이다.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회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너무 오래 자연을 대상화했고, 이용해왔고, 때로는 착취해왔다. 이제는 관계를 바꾸어야 할 때다. 자연은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 할 친구이자 이웃이다. 그 인식을 바꿀 때, 우리의 삶도 달라질 것이다. 지구는 거대한 숲이고, 우리는 그 숲의 한 나뭇잎이다.

오늘 하루, 자연에게 다가가 보자. 가까운 공원을 걷거나, 창밖 하늘을 바라보거나, 한 줌의 흙을 손에 쥐어보자. 그 속에 숨겨진 생명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에 내 마음을 포개보자. 자연은 언제나 거기 있다. 우리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숲에게서 다시 삶을 배운다. 그 말 없는 말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갈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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